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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동남아 한인경제인) ①대만 황희재씨 (인터뷰)

작성일: 2011-10-26 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수: 636

연합뉴스



<동남아 한인경제인> ①대만 황희재씨

 

2011-10-21






1990년 단교전 진출.."대만에 관심 가져달라"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20년 전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면서 대만은 한국으로부터 잊혀진 듯했지만 여전히 민간차원에서는 교류가 이어졌다.


한국과 대만의 단교(斷交) 2년 전인 1990년 대만에 진출해 섬유무역업체인 유허국제유한공사를 창업, 현재 연간 3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황희재(50)씨는 민간 외교관 중 한 명으로 꼽을 수 있다.


황씨는 1986년 동오대학교 중문학연구소에 유학하면서 대만과 인연을 맺었다. 안동대 한문학과를 나와 학군장교(ROTC)로 제대하고 제약회사에 영업사원으로 들어갔지만 지방대 출신이라는 차별 때문에 한계에 부딪혔고, 경쟁력을 키우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해 유학을 감행했다.


당시 주대만 한국대사관에서 경비를 서며 주경야독하던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중국어 통역 인력이 필요해지자 귀국해 고려합섬에 입사, 장치혁 회장의 수행비서로 일했다. 비서로 일하면서 그는 한ㆍ중 탁구 커플 안재형과 자오즈민 부부가 국경을 넘어선 사랑의 결실을 맺는데 물밑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잘나가던 회사를 뛰쳐나와 다시 대만으로 날아갔다. 유학시절에 만나 결혼한 대만인 아내를 배려하고, 사업을 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야심 때문이었다.


처음 시작한 사업은 섬유원단 무역이었다. 한국 섬유원단을 가져다 가가호호 방문하며 세일즈를 했지만 그리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던중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 섬유산업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그나마 유지하던 사업도 동반 추락했다.


또 다른 진로를 모색하던 중 대만산 섬유원단이 각광을 받는 것에 주목, 이를 구매해 역으로 한국에 판매했다. 서울에 사무실을 둬야 할 만큼 사업은 팽창했다. 리복, 나이키 등 글로벌기업의 에이전트가 된 것은 물론 호남정유가 생산한 화학원자재를 대만으로 수출하는 길도 찾았다.


그는 사업이 안정되자 한국과 대만 간 민간 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가장 먼저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대만 지회를 설립했다.


4년째 지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매년 1월 코트라 센터장을 초청해 세계시장과 경제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고, 지회 차원에서 한국과 민간교류를 어떻게 활성화할 지를 고민하며 지역활성화대회를 열었다. 또 양국간 교류가 끊이지 않도록 차세대 무역스쿨을 통한 무역인 양성에도 앞장섰다.


대만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약 4천명. 처음에는 주재원과 유학생이 많았지만 단교 후에는 상사원과 사업가, 국제결혼자들이 주를 이뤘다. 그는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대만지회장과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며 대만을 한국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제16차 세계한인경제인대회에 참석한 황 지회장은 21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작년 양안 경제교류는 1천억달러를 넘어섰고, 상호 방문자도 500만명이 넘어섰는가 하면 대만에서 중국 9개 도시에 매일 정기 직항로까지 열려있는 상황"이라며 "중국마저도 대만을 인정하고 손을 맞잡는 시대인데, 우리는 언제까지 중국의 눈치를 보며 실속을 챙기지 못할 것이냐"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최근 한국과 대만은 상호 5대 교역국의 위치로 발전했고, 2004년 민간항공협정이 체결되면서 상호 방문 관광객 수도 60만명을 넘어섰으며 지·상사 수도 단교때 보다 5배이상 많아졌지만 정부 차원에서 더욱 적극적인 교류를 추진해야 할 것"이라며 "현재 대만은 과거의 아픈 기억을 되새김하지 않고, 한국과 여러 각도에서 조화로운 상생을 도모하려고 많은 분야에서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월드옥타 대만지회 황희재 지회장.

ghw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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