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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강훈의 와일드 터치 '민다나오섬 평화의 전령' 이원주

작성일: 2011-02-10 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수: 522

chosun.com



[Why] 강훈의 와일드 터치 '민다나오섬 평화의 전령' 이원주

마닐라=강훈 기자 nukus@chosun.com


2011.02.06

▲ 자그마한 체격의 이원주. 그러나 그로 인해 수많은 민다나오 원주민들의 삶은 훨씬 성장했다.
이원주는“내 가 그들보다 조금 나은 위치에 있으니 도울 뿐”이라고 말한다. / 사진작가 김진수


학교 40개 지어줬다… 필리핀 반군도 그를 반긴다
나이도 생일도 모르는 원주민들,물건 팔고도 셈을 못하니 장사꾼들에게 번번이 속아…글 깨우쳐 줘야겠다고 결심…가톨릭·이슬람·원주민 지역 돌아가며 학교 지어줬더니…로켓포 든 반군들도 나를 친구처럼 대해 주더라


필리핀 수도 마닐라는 루손섬에 있다. 마닐라에서 비행기로 1시간 20분 거리인 민다나오. 루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이자, 전 세계적으로 '반군의 섬'으로 악명이 높다. 남한 땅만한 민다나오섬에는 테러 관련 외신 뉴스에 등장하는 이슬람 반군 사령부가 있다. 바닷가 쪽 사람이 살 만한 땅을 두고는 이슬람과 가톨릭 세력이 툭하면 유혈 분쟁을 벌이고, 안쪽 정글엔 칼 차고 도끼 든 원주민들이 살고 있다. 한마디로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땅이다.

28년 전 필리핀 마닐라에 정착해 사업가로 크게 성공한 이원주(57)는 한 달에 꼭 닷새씩 마닐라에서 사라진다. 그가 가는 곳은 반군의 땅, 민다나오. 그는 독실한 불자(佛者)다. 하지만 그가 민다나오에 가면 원주민이 두 손 들어 반기고 반군이 로켓포를 메고 마중 나온다.

그가 민다나오 오지(奧地)에 만든 학교만 40개다. 돈만 대준 게 아니다. 원주민과 함께 철근, 모래 나르고 콘크리트 치며 함께 한칸 한칸 학교를 지었다. 완공된 교사(校舍)를 매달 순회하며 가방·연필·노트·스케치북·약품을 갖다주기 위해 이원주는 한 달에 5일씩 민다나오를 찾는다.

물론 이원주 혼자 한 일은 아니다. 국제구호기구인 사단법인 JTS(Join Together Society:이사장 법륜스님)의 지원을 받는다. 지부격인 'JTS 민다나오'를 창립하고 대표를 맡고 있는 자원봉사자가 이원주다. '증오와 갈등으로 점철된 민다나오에 희망을 심어주는 평화의 빛이자 사랑의 씨앗을 심는 인물'. 손상하 전 필리핀 대사는 기고문에서 이원주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설 연휴 전날인 2월 1일, 마닐라에서 이원주를 만났다. 부처처럼 환한 미소를 짓는 그의 첫마디는 "여기까지 뭐하러 왔소"였다.


◆이름도 몰라요, 나이도 몰라

―그럼 민다나오에는 왜 가셨소.

"불교수행모임 '정토회'를 이끄는 법륜스님이 2002년 막사이사이상(국제평화부문) 수상차 필리핀에 오셨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토니 대주교가 오랜 분쟁지역인 민다나오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을 법륜스님에게 자문했다. 불교 신자의 자격으로 스님을 수행해 민다나오를 처음 가 봤다."



 
▲ (위)이원주가 대표인‘JTS 민다나오’가 설립한 학교의 모습. 책상도 교과서도 이원주가 책임졌다.
/ (아래)이슬람 반군들과 봉사현장으로 이동 중인 이원주. 반군들도 이젠 이원주와 장난치는 사이다.

- 실상이 어떻던가.

"원주민 대부분이 글 모르고 셈을 못하더라. 한 원주민이 아바카(마닐라삼)를 등에 지고 5~6시간 산 넘고 물 건너 시장에 왔다. 약삭빠른 도매상이 물건 넘겨받고 원주민에겐 몇백원 쥐여줬다. 덧셈 뺄셈을 못하니 원주민은 주면 주는 대로 받는다. '그래도 좋다'면서 웃으면서 산으로 다시 올라가더라. 대대로 그렇게 살아온 거다. 마을 촌장에게 '몇 사람 사냐'고 물으면 '한 집에 7~8명 산다'고 대답할 뿐 통계란 게 없는 곳이다."

―문맹(文盲)도 심각한가.

"한 산간 지역에 48가구가 사는데, 글 아는 사람이 딱 두 명 있더라. 다들 나이도, 생일도 모른다. 누가 먼저 태어났는지 순서대로 기억해 위아래만 구분하고 지낸다. 그러다 외지인이 이사 오면 누가 아래·위인지 부락 전체가 헷갈려 버린다. 필리핀에선 흔히 이름을 줄여서 부른다. 글 아는 주민이 '토니'라는 남편을 둔 아주머니에게 '안토니오' 어디 갔느냐고 물었더니 '그게 누구냐'고 되묻더라. 주민 명부엔 본명이 '안토니오'로 되어 있지만, 부인도 10년씩 남편 본명 모르고 살아온 거다."

―그들은 뭘 먹고 사나.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고구마나 옥수수를 재배하거나 열매 따먹고 사냥을 한다. 과일·새·멧돼지 판 돈으로 옷이나 생필품 사는 정도다. 나무 기둥 4개 땅에 박고 나뭇가지나 풀을 덮은 집에 산다. 전기는 구경도 못하고, 식수가 부족해도 우물 팔 연장이 없는 곳이 태반이다. 지도에 없는 마을과 공무원이 한 번도 찾지 않은 곳이 더러 있다."

―원주민들 포악하지 않던가.

"처음엔 경계하지만 상대를 알고 나면 그런 순박한 사람들이 없다. 한번은 여러 번 갔던 마을에서 쌀을 구해 놓았더라. 처음 받는 '접대'였다. 밥이 나오기에 무슨 반찬이 나올까 하고 기다리는데, 원주민들이 교대로 방에 들어와 우리 얼굴 한 번 밥 한 번 쳐다보고 그냥 나가더라. 1시간 지나서야 돌돌 굴러다니는 그 설익은 쌀밥이 만찬의 전부란 사실을 알았다. 그래도 비싼 쌀 사려고 그 먼 시장에 나가 고구마 팔았을 생각하면 어찌 고맙지 않겠냐."

―당시 어떤 생각이 들던가.

"적어도 이들에게 글 깨우쳐주고, 더하기 빼기는 할 수 있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문명인들에게 피해보고 살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나. 당시 법륜스님이 상금 5만달러 전액을 민다나오를 위해 내놓았고, 난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했다."

―무엇부터 할지 막막했을 텐데.

"우선 배울 곳부터 마련해야 했다. 처음엔 경계심을 풀어주기 위해 가톨릭 지역에 학교를 짓기로 했고, 이후 문명 혜택이 절대 부족한 원주민과 이슬람 반군 지역으로 옮겨가며 학교를 짓기로 했다. 산간 지역 대부분 학교가 없었고, 그나마 있는 학교도 비 오면 물 줄줄 새고 교실 바닥은 금세 뻘이 되고 말더라."

―산과 정글이 많아 자재 옮기기도 힘들었을 텐데.

"1인당 하루 소득이 1달러 미만인 곳을 찾다 보니 대부분 산간 오지에 학교를 짓는다. 비포장 도로라도 있으면 감사하고, 대개 도로에서 5시간 이상 떨어진 곳이 기본이다. 애부터 노인까지 길이 끊어지는 곳에 나와 철근, 벽돌 나르는 것을 돕는다. 어떤 때는 밤새도록 늪 같은 뻘밭을 걸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3㎏쯤 되는 흙이 신발에 붙어 올라온다. 뻘을 나르는 건지, 짐을 나르는 건지."


 
▲ 이원주는 기술자, 자원봉사자, 원주민과 함께 계속해서 민다나오에 학교를 지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책가방과 학용품 그리고‘내일’을 줬다(사진 위₩가운데).
로켓포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민다나오의 반군들은 그를 가족처럼 맞았다. / 사진작가 김진수


―건축 자재가 마련된 뒤에는?

"현대식 건물 짓는 기술을 전수하고 공동체 생활을 통한 '협동'을 가르쳐주는 것도 JTS의 봉사 목적이다. 우리가 데리고 간 기술자와 자원봉사자, 원주민이 어울려 학교를 짓는다. 그 방식은 지금도 계속된다."

―그들이 금방 기술을 익히던가.

“초창기 한 마을에서 교실 바닥을 나무로 깔기로 했다. 원주민에게 일 맡기고 얼마 뒤 가봤더니 교실 바닥이 울퉁불퉁 가시밭이 되어 있더라. 바닥재로 쓸 판자를 정글도(刀)로 찍고, 쪼고, 다듬어 그 모양 된 거다. 당장 대패 사다줬다. 처음엔 신기해하더니, 이젠 대패질 잘한다.”

―민다나오엔 반군 통치 지역이 많지 않은가.

“그렇다. 필리핀에 이슬람 교도가 들어온 건 14세기쯤이다. 이후 17세기 마젤란이 필리핀에 오면서 가톨릭이 전파돼 지금까지 대세를 이뤘고, 19세기 말 미국 식민지 시대엔 기독교가 들어왔다. 이슬람 세력에 원주민이 쫓겨가고, 이후 이슬람 세력이 다시 가톨릭에 밀려 민다나오 산간지대로 들어간 것이다. 민다나오 인구 2000만명 중 이슬람교도는 이제 20%밖에 안된다. 하지만 민다나오 내륙에선 여전히 MILF(모로이슬람해방전선) 같은 강성 조직이 활동하고 있다.

―당신이나 JTS나 불교와 관련이 깊은데, 괜찮았나?

“아무리 보잘것없는 지역이라도 조직은 무서운 존재다. MILF는 이슬람 지역에 들어가기 전부터 우리를 관찰해왔고 신분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우리는 종교 얘기는 입도 뻥긋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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